Prologue of 양염설가

출처 : http://appleproject.kirie.net/pro_kagerou/

마을에서 제일 큰 저택. 그곳에 마을에서 제일 큰 어르신이 살고 계신다. 활짝 열린 마루에는 방석이 깔려져 있고, 그곳에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나이는 열다섯 정도의 소녀가 찰싹 앉아 있었다. 이름은 히사기(楸)라고 한다.

「하아……아직이려나……」

히사기는 동글동글한 눈으로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루에서 늘어뜨린 양발을 흔들거리며 우울한 듯이 중얼거렸다. 이미 12월도 반이 지났다. 기온도 입김이 새하얘질 정도로 낮아지고 아침과 밤으로는 서릿발이 설 정도로 추워진다. 그런데도 올해는 아직도 눈이 내리지 않았다. 하늘이 어두컴컴하게 흐려지더라도 때때로 차가운 비를 뿌릴 뿐, 히사기가 기다리는 눈은 좀처럼 내려주질 않는다.
평년같았으면 주위는 이미 새하얀 설경으로 변해 있었을 무렵인데. 히사기는 후우, 하고 턱을 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히사기는 겨울이 무척이나 좋았다. 눈이 내리지 않으면 눈싸움도 못 하고 얼음집이나 눈사람도 못 만든다. 올해엔 엄청 크게 만들고 싶어. 그리고 안에 풍로를 가져다 놓고 떡을 구워먹고 싶어. 냄비를 가져가는 것도 좋겠네. 역시 뜨거운 음식은 추위 속에서 더 맛있단 말이지.

「빨리 좀 안 내리려나……이제 내릴 때가 된 것 같은데……」
「안 내리는 편이 더 좋아요. 그렇게 귀찮은 건」
내뱉은 혼잣말에 등뒤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기에 히사기는 깜짝 놀라 뛰어올랐다.

「우, 우와앗!? 사키!?」
「후훗. 뭘 그렇게 놀라시는 건가요?」
갑자기 히사기의 등 뒤에 나타난 여자의 이름은 사키(咲)라고 한다. 히사기보다 세 살정도 연상일 뿐인데도 침착한 행동거지나 시원스런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색기가 그녀를 때때로 나이 이상으로 어른스럽게 만든다. 사키는 어렸을 적부터 이 저택에 고용살이로 내보내져 지금은 가사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장의 방침도 있었던 탓에 학문도 익혀서 면학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히사기를 돌봐주거나 말괄량이 기질을 나무라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다. 가장의 딸이기에 히사기 쪽이 더 높은 입장일 터이지만 히사기는 사키에게 좀처럼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아이 참~~~! 놀래키지 마! 말 없이 등 뒤에 오지 마라고 했었잖아!」
「마음이 떳떳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놀라는 법입니다. 또 좋지 않은 궁리를 하고 계셨던 건 아닌가요?」
「난 떳떳하다고! 안 좋은 궁리 같은 것도 한 적 없어!」
「그렇군요. 지금부터 궁리를 하실 참이었군요」
「왜 그렇게 되는 거냐고~~~!」
「후훗, 실례. 농담입니다. 그래서 또 눈을 기다리고 계신 건가요?」
「그래!」
자신을 놀린 것을 알고서 히사기는 입을 불쑥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눈은 내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니란 말야! 즐겁다고!」

가슴 언저리에서 양손으로 주먹을 만들며 히사기가 소녀의 주장을 펼치지만 사키는 계속해서 눈이 내릴 때 생기는 불이익을 들려주었다.

대설 지대인 이 근방에서는 매년 장성한 남자보다도 높게 눈이 쌓인다. 마을들을 잇는 길은 끊어지고 버스가 오지 못하게 된다. 이동 수단은 도보나 썰매로 한정되기에—산속에 비축해 뒀던, 1년 동안 말린 장작을 옮기기에는 절호의 시기이기는 하지만—생활 잡화를 조달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우편물도 늦게 도착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게다가 지붕 위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집이 무너지기 때문에 중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덤으로 그 작업을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매년 다치는 사람도 생긴다. 어른들에게 있어서 눈은 귀찮은 존재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조금 불편해지는 것 뿐이라고」
「많이 불편합니다」
「……심술궃은 사키는 싫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은 사키가 내뱉은 바늘같은 말에 찔려 펑, 하고 터져버렸다.
히사기는 뿌우, 하고 떡처럼 뺨을 부풀리며 고개를 돌렸다.

「후훗, 이거 실례했네요」
그런 모습이 사키에게는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져서 무심코 주종관계를 잊고 이렇게 놀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요. 오늘은 내릴지도 모르겠네요. 눈 향기가 나요」
「앗, 사키도 그렇게 생각해?」
「네. 그러니 방금 전의 사과를 겸해서 히사기님이 좋아하시는 카키모치를 가져올까요?」
「정말로!?」
「네. 이제 슬슬 다 되었겠지요. 맛도 볼 겸요」
「만세에~~~!!」
방금 전까지 그렇게나 자신을 놀리던 것도 잊고서 히사기는 손을 들어 기뻐했다.

――
사키는 부엌으로 간지 20분 정도 후에 돌아왔다.
「기다리셨지요」

그렇게 말하고서 살짝 무릎을 꿇더니 쟁반에서 뜨거운 녹차가 채워진 찻잔과 막 구워져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카키모치가 놓여진 접시를 히사기에게 살짝 놓았다.

「와아~~~! 고마워!」

기다리라는 명령이 막 풀린 강아지처럼 히사기가 손을 내밀어 잽싸게 입으로 채어넣었다.
바삭거리는 소리는 내면서 히사기는 말도 없이 세 장 정도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서 차를 마신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으응~~~! 역시 사키가 만든 카키모치는 정말 맛있어!」
「후훗, 감사합니다」

가을에 막 수확한 찹쌀을 찧어 건조시킨 것을 얇게 썬 후, 쇼유과 미림, 거기에 미소와 시치미를 살짝 첨가한 소스를 발라 구워낸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사키가 만든 카키모치를 히사기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절묘한 소스로 간이 된 그것은 숯불에 구워져서 향기로움과 바삭한 식감, 그리고 떡이 가지는 말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사 온 카키모치나 전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하아~ 매일마다 이걸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심코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입 밖에 낸다. 이 부근은 곡창 지대도 가깝기에 찹쌀이 그렇게 귀한 물건은 아니었으나 이 카키모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말린 후에 추운 곳에 내놓아 숙성시킬 필요가 있었다. 봄이나 여름에도 떡은 만들 수 있지만 금세 곰팡이가 생기기 때문에 어려웠다. 냉장고는 시내의 얼음 가게나 아이스크림을 내놓는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 냉장 보존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센베이는 초가을에서 눈이 녹아들 무렵까지만 먹을 수 있는 겨울의 별미였다.

「만약 먹을 수 있다 셈 치더라도 분명 질릴 거예요」
「그럴 리 없다구~ 아, 사키도 먹을래?」

이제 두 장 남았을 무렵, 히사기는 사키에게도 그것을 권했다.

「아뇨, 히사기님이 이렇게나 좋아하시는 걸 제가 먹을 수는 없지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 후훗, 하고 미소지으며 사키가 대답한다.
「난 괜찮으니까 사양할 것 없어」
「실은 전 아까 전에 맛보기란 명목으로 배부르게 먹었거든요」
「아~~~ 너무해!! 그럼 더 많이 구워줘~~~!」
「그럼 안 돼요. 저녁을 못 드시게 되어요. 그리고 간식을 너무 주지 마라고 주인님이 말씀하셨거든요」
「거짓말~~~! 아버지가 그런 말씀 하실 리가 없다고!」
「정말이에요. 후후훗」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명령을 받은 것이었으나 화를 내는 히사기가 귀여워서 그런 식으로 말하게 되는 사키였다.

뿌우, 하고 다시 히사기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시야 끝에 뭔가 자그마한 조각이 지나간다.

「아…………」

회색 하늘에서 춤추듯 내려오는 한 조각 눈송이를 그 누구보다도 빨리 발견한 것은 히사기였다.
가만히 바라보면서 파편을 향해 황급히 양손을 내민다. 그것은 히사기의 조그만 손바닥 안에서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시선을 하늘로 돌리자 내려오는 눈송이는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순식간에 하늘을 채워간다.

「……내리기 시작하는군요」
사키도 히사기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발견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던 눈송이였지만 지금은 주위를 온통 채우려는 기세로 펑펑 내리고 있다.

「와아아아! 대단하다! 잔뜩 내리고 있어~~~!」

히사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기세로 신발을 신은 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이다~ 눈이다~ 라면서 신나하고 있었다.
「아하핫! 눈사람에 얼음집에 눈싸움!」

히사기님도 출가하셔도 될 나이가 되셨을 터인데, 정말 어린애같으시다니깐.
뭐, 그런 점도 귀엽지만요. 사키는 귀찮은 계절이 왔다는 사실도 잊고서 미소를 지은 채 신이 난 히사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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